회사에 입사하면 한 번쯤 "퇴직연금 DB형으로 할래요, DC형으로 할래요?"라는 질문을 받게 됩니다. 이름만 들어서는 무엇이 다른지 감이 잘 오지 않아 대충 고르는 분들도 많은데요. 하지만 이 선택에 따라 은퇴할 때 손에 쥐는 퇴직금이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까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퇴직연금 DB형과 DC형의 차이를 어려운 용어 없이 쉽게 정리했습니다. 각 유형의 구조와 장단점, 그리고 내 상황에 맞는 퇴직연금 유형을 고르는 기준까지 차근차근 알아보겠습니다.

1.퇴직연금 DB형(확정급여형)이란? 받을 돈이 미리 정해진 방식
DB형은 'Defined Benefit'의 약자로, 우리말로는 확정급여형이라고 부릅니다. 말 그대로 근로자가 퇴직할 때 받을 급여가 미리 확정되어 있는 방식입니다. 계산법은 기존 퇴직금과 거의 같습니다. 퇴직 직전 3개월의 평균임금에 근속연수를 곱한 금액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퇴직 전 월평균 임금이 500만 원이고 20년을 근무했다면, 약 1억 원의 퇴직급여를 받게 됩니다. 회사는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금융기관에 적립금을 쌓고 운용하는데, 운용 결과가 좋든 나쁘든 그 책임은 회사가 집니다. 근로자는 투자에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DB형의 가장 큰 장점은 안정성입니다. 주식시장이 폭락해도 내가 받을 퇴직금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특히 임금이 해마다 꾸준히 오르는 회사라면, 마지막 임금을 기준으로 계산하는 DB형이 유리합니다. 근속연수가 길수록, 승진이 잦을수록 퇴직금 규모가 커지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단점도 분명합니다. 퇴직 직전에 임금피크제가 적용되거나 연봉이 깎이면 퇴직금도 함께 줄어듭니다. 또한 DB형은 원칙적으로 중도인출이 불가능해 목돈이 급하게 필요할 때 활용하기 어렵습니다. 근로자가 직접 수익을 더 낼 기회도 없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참고로 DB형이든 DC형이든 퇴직할 때 받는 퇴직급여는 원칙적으로 개인형 퇴직연금(IRP) 계좌로 옮겨집니다. 이 돈을 바로 일시금으로 찾을 수도 있지만, 55세 이후 연금 형태로 나눠 받으면 퇴직소득세를 30~40% 정도 덜 낼 수 있습니다. 어떤 유형을 선택하든 퇴직 후 수령 방법까지 미리 생각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2.퇴직연금 DC형(확정기여형)이란? 내가 직접 굴리는 방식
DC형은 'Defined Contribution'의 약자로, 확정기여형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확정된 것은 받을 돈이 아니라 회사가 넣어주는 돈입니다. 회사는 매년 근로자 연간 임금총액의 12분의 1 이상을 근로자 명의의 퇴직연금 계좌에 넣어줍니다. 그 이후의 운용은 근로자 본인의 몫입니다.
쉽게 말해 회사가 매년 한 달 치 월급 정도를 내 계좌에 넣어주면, 나는 그 돈으로 예금, 펀드, ETF 같은 상품을 골라 투자하는 구조입니다. 운용을 잘하면 퇴직금이 DB형보다 훨씬 많아질 수 있지만, 투자에 실패하면 원금보다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투자 결과에 대한 책임이 근로자에게 있다는 점이 DB형과의 가장 큰 차이입니다.
숫자로 비교해 보면 차이가 더 분명해집니다. 연봉 6,000만 원인 직장인이라면 회사는 매년 약 500만 원을 DC형 계좌에 넣어줍니다. 이 돈을 20년간 연 2% 예금으로만 운용하면 약 1억 2,000만 원이 되지만, 연 5% 수익을 꾸준히 낸다면 약 1억 6,500만 원까지 불어날 수 있습니다. 같은 회사, 같은 연봉이라도 운용 방식에 따라 수천만 원의 차이가 생기는 셈입니다.
DC형의 장점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적극적으로 운용하면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둘째, 무주택자의 주택 구입이나 6개월 이상의 요양 등 법에서 정한 사유가 있으면 중도인출이 가능합니다.
셋째, 본인이 추가로 돈을 납입하면 연금저축과 합산해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절세 효과도 누릴 수 있습니다.
단점은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가입만 해두고 방치하면 수익률이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운용 지시가 없을 때 미리 정한 상품으로 자동 운용되는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 도입되었으니, 투자에 자신이 없다면 이 제도를 활용해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3.DB형과 DC형, 나에게 맞는 퇴직연금 유형 고르는 법
결국 핵심은 내 임금상승률과 내가 기대하는 투자수익률 중 어느 쪽이 더 높으냐입니다. 임금상승률이 높다면 DB형이, 투자수익률이 더 높을 자신이 있다면 DC형이 유리합니다. 이 기준을 바탕으로 상황별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먼저 DB형이 잘 맞는 사람입니다. 연공서열 문화가 강해 해마다 임금이 꾸준히 오르는 회사에 다니는 분,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할 계획인 분, 투자에 관심이 없거나 원금 손실이 걱정되는 안정 추구형이라면 DB형이 편합니다.
다음은 DC형이 잘 맞는 사람입니다. 임금상승률이 낮거나 연봉이 정체된 분, 임금피크제 적용을 앞둔 분, 이직이 잦은 분, 그리고 직접 투자하며 수익을 높이고 싶은 분에게는 DC형이 유리합니다. 특히 임금피크제 시행 전에 DB형에서 DC형으로 전환하면 퇴직금 감소를 막을 수 있어 많은 직장인이 활용하는 방법입니다.
한 가지 꼭 기억할 점이 있습니다. DB형에서 DC형으로 바꾸는 것은 비교적 자유롭지만, DC형에서 DB형으로 되돌리는 것은 일반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니 전환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또한 회사마다 제도 운영 방식이 다를 수 있으니 인사팀이나 퇴직연금 사업자에게 우리 회사 규약을 먼저 확인하세요.
아직 고민된다면 스스로에게 세 가지만 물어보세요.
앞으로 내 연봉이 매년 3% 이상 꾸준히 오를 것 같은가?
지금 회사에서 10년 이상 근무할 생각인가?
투자 손실이 나도 마음 편히 기다릴 수 있는가?
앞의 두 질문에 '예'라면 DB형을, 마지막 질문에 '예'라면 DC형을 우선 검토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일부 회사는 DB형과 DC형을 함께 운영하는 혼합형도 허용하니, 두 방식의 장점을 나눠 누리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입니다.
지금까지 퇴직연금 DB형과 DC형의 차이를 쉽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정리하면 DB형은 회사가 책임지는 안정형, DC형은 내가 직접 굴리는 성장형입니다. 정답은 없지만 내 임금 흐름과 투자 성향을 함께 따져보면 답이 보입니다. 오늘 퇴직연금 계좌를 한 번 열어 내 유형과 수익률부터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작은 관심이 노후의 큰 차이를 만듭니다.